왜 국가는 스포츠에 관여할까?

왜 국가는 스포츠에 관여할까?

왜 국가는 스포츠에 관여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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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와 국내정치: 왜 국가는 스포츠에 관여할까?


국가는 스포츠를 '정책으로 활용'하기도 하고 '정치적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정책적 활용'은 긍정적이고 '정치적 이용'은 부정적인 어감을 갖지만, 사실 국가가 스포츠를 활용하는 방식이 '정책적 활용'인지 '정치적 이용'인지는 한눈에 구분하기 어렵다. 동전의 양면처럼 함께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이것 아니면 저거라는 생각보다는 특정한 국면에서 '앞면' 또는 '뒷면이 더 도드라지는 것으로 이해해야 한다.

 

스포츠정책의 양면성


국가는 스포츠 관련 정책을 수행하며 스포츠에 개입한다. 그런데 이때의 스포츠정책은 두 가지 효과를 동시에 발휘한다. 명시적으로 선포된 정책집행의 목적인 시민의 복리(예건강증진, 여가제공 등)와 의도적, 또는 비의도적으로 발휘되는 정치적 효과(예. 정부에 대한 지지가 그것이다. 예를 들어 학교스포츠클럽을 활성화하려는 지방정부나 교육청의 정책은 학령기 시민의 건강과 사회성 함양을 목표로 기획하는 것이지만, 그 결과 학생들과 학부모의 만족도가 높은 경우 이를 시행한 지방자치단체장이나 교육감에 대한 정치적 지지도 동시에 올라갈 것이다. 이러한 정치적 지지를 감안하면, 아주 사소한 정책이라 할지라도 정치적 고려 없이 시행되기는 어렵다는 점에서 스포츠정책은 본질적으로 정치적이라 할 수 있다.

 

스포츠정책의 기능과 그에 동반되는 정치적 효과들


국가는 여러 가지 공동체적 목표 달성을 위해 스포츠를 활용한다. 하지만 이런 정책은 동시에 다양한 방식의 정치적 논쟁을 낳는다.

 

(1) 국민건강 증진과 여가기회 제공


국민의 건강과 여가는 국가안보는 물론 국가의 산업생산력과 직결된다. 또한 국민건강은 국가의 의료비 지출 부담을 줄인다. 이처럼 보건 복지, 재정, 국방과 관련되어 있는 까닭에 정부는 규칙적인 신체활동과 볼거리를 제공하는 스포츠를 적극적인 정책수단으로 활용한다. 공공 스포츠센터, 공원 등의 기반시설을 구축하여 시민들이 스포츠에 참여하거나 쉴 공간을 마련하는가 하면, 정기적으로 스포츠에 참여할 수 있는 생활체육 프로그램을 보급하기도 한다. 각 스포츠를 주관하는 경기단체들 및 지역 스포츠클럽에 직접 예산을 지원하여 보다 적극적으로 해당 스포츠를 보급할 수 있도록 돕기도 한다. 그뿐만 아니라 정기적인 스포츠 관람기회를 제공하는 프로스포츠 구단들의 원활한 운영을 위해 법규정을 완화하거나 세금을 우대해주기도 하고, 공공시설인 경기장을 무상이나 저가로 임대해주는 등의 조치를 취하기도 한다.

그런데 이러한 정부의 선한 의도가 언제나 모두에게 이로운 결과로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공공 스포츠시설의 구축은 필연적으로 '어디에'라는 문제를 동반한다. 인구에 비해 넉넉한 스포츠시설을 가진 지역이 있는가 하면, 주민들이 접근할 수 있는 스포츠시설이 턱없이 부족한 지역도 있다. 따라서 시설을 새로 지을 때는 어디에 짓느냐가 정치적으로 매우 예민한 문제가 된다. 또한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클럽에서 스포츠가 육성되는 해외의 사례에서, 정부의 지원금은 스포츠 보급사업을 보다 활발히 수행할 수 있도록 하는 연료가 되지만, 지원금을 받게 되는 그 순간부터 클럽의 자발성은 정부가 부과하는 행정적 업무와 기대(결과보고)에 의해 관료적 의무감을 동반하게 된다. 프로구단에 대한 경기장 장기임대 또한 반드시 정치적으로 중립적이거나 바람직한 행위라고 볼 수 없다. 이러한 혜택은 일부에 불과한 스포츠팬의 여가비용과 프로구단의 상업활동을 일반시민의 세금으로 보조하는 행위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2) 각종 사회문제에 대한 해결책


스포츠는 종종 '만병통치약'으로 인식된다. 스포츠 참여가 인격형성이나 협동심. 자주성 등을 길러주는 한편, 사람들 간의 자연스러운 교류를 형성해 '사회자본'을 구축한다고 여겨지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스포츠는 학령기 아동과 청소년의 인성교육에 있어 중요한 부분으로 간주되고 하며, 불량청소년이나 사회적 소수자(예이주노동자 등)의 긍정적인 재사회화에 획기적인 해결책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또한 지나치게 개인화된 도시생활이나 신뢰가 붕괴된 지역사회에서 사람들을 하나로 엮어주는 매개체로 여겨지기도 한다. 정부는 이와 같은 '스포츠 효용론'을 배경으로 학교체육 프로그램을 활성화하는가 하면, 이주노동자들이 본국에서 즐기던 스포츠를 향유할 수 있도록 리그나 체육대회를 제공하기도 하고, 지역사회에 공공 스포츠센터나 스포츠클럽 설립을 지원하기도 한다.

하지만 Coalter를 비롯한 여러 학자는 스포츠가 사회변화에 직접적으로 기여한다는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고 주장한다. 스포츠 그 자체가 어떠한 상황에서도 사회를 개선하는 효과를 발휘하는 요술지팡이라기보다는 스포츠를 어떻게 보급하고 교육하느냐에 따라 그것이 가진 사회 개선의 역량이 효과를 발휘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Grix(2016)는 한발 더 나아가 스포츠가 각종 사회문제를 직접 해결할 수 있다는 착각은 그러한 사회문제들이 뿌리내리고 있는 더 심각한 사회적 조건들(빈부격차, 인종차별 등)에 눈을 감게 한다고 경고한다. 스포츠를 통한 사회변혁은 그 일시적인 효과로 말미암아 근본적인 사회적 조건을 개선하려는 노력 자체를 희석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관점을 가진 학자들은 스포츠정책이 스포츠 본연의 기능인 건강증진과 여가선용의 기회 확대에 집중해야 하고, 여타 사회개선의 기능은 보다 장기적이고 종합적인 관점에서 수립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3) 사회통합


앞서 살펴보았듯, 스포츠 경기가 갖는 '대립적', '집합적' 속성으로 인해 같은 팀을 응원하는 사람들은 '우리(we-ness)'를 경험한다. 국가단위에서 이러한 경험은 '상상의 공동체로서 민족의식을 창조하고 강화한다. 공동체가 함께 기다리고, 즐기고, 그 기억을 공유한다는 점에서 Giulianotti(2005)는 영국의 스포츠경기를 왕실 결혼식, 시가행진, 추도식에 빗대기도 한다. 그러한 과정을 통해 스포츠는 공동체를 하나로 만드는 의례로 기능한다는 것이다. 국가는 올림픽이나 FIFA월드컵과 같은 스포츠 메가이벤트를 유치할 때, 그리고 엘리트스포츠의 선전을 위해 막대한 예산을 편성할 때에 스포츠가 갖는 사회통합의 기능을 강조한다.

물론 이러한 사회통합 효과는 축제 같은 순간이 지나가면 덧없이 사라진다. 골이 터지는 순간 함께 껴안고 환호했다고 해서 경기가 끝난 후의 일상에서 갑자기 친구가 되는 것은 아닌 것처럼 말이다. 스포츠는 사회적 연대를 열어갈 열쇠를 제공할 뿐, 스포츠만으로 연대가 지속될 수도 없고, 또 그래서는 위험하다. 왜냐하면 공동체를 일시적으로 결합시키는 스포츠의 문화적 기능이 다른 허위관념과 결합할 경우, '우리(we-ness)의식'이 일상의 영역으로 무리하게 확장돼 민주주의의 기본 가치와 제도를 훼손할 수 있기 때문이다. 가령 스포츠경기의 결과를 놓고 민족의 우수성. 인종 간 우열을 논하는 담론은 인종차별이나 이민자에 대한 혐오로 이어질 수 있다.

정치세력이나 정치지도자는 스포츠를 통해 대중이 만끽하는 '하나가 되는 기분'과 '소속감'을 자신들에 대한 지지나 추종의 에너지로 이용하고자 한다. 히틀러의 나치정부가 기획하고 연출했던 1936년 베를린 올림픽은 스포츠가 가진 사회통합 효과를 통치체제 여기능 정당화에 활용한 대표적인 사례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사회통합 효과가 만드는 스포츠에 대한 환호는 중대한 정치적 사안, 지배층의 부패, 국외에서의 부당한 전쟁수행과 같은 부조리로부터 눈을 돌리도록 한다.

 

(4) 국가 인지도 및 이미지 상승


스포츠 메가이벤트의 개최 엘리트스포츠 육성을 통해 국내에서 거둘 수 있는 효과가'사회통합'이라면, 지구적 차원에서는 국가의 인지도나 이미지의 향상을 얻을 수 있다. 올림픽 메달 집계순위를 국력과 동일시하는 것은 구시대적 발상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국제사회에서 여전히 유효한 지표로 통용된다. 올림픽 메달 순위가 엘리트스포츠에 투여된 예산, 인구의 크기 등과 관련되기 때문이다. 국위선양을 위한 국가의 스포츠정책은 대체로 엘리트스포츠에 대한 집중투자와 관련된다. 종목별 경기단체에 대한 성과별 재정 지원, 국가대표선수촌의 운영,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서의 성과에 따라 지원되는 연금제도나 병역대체복무제도 등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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