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IA : 경주차가 더 느리기를 바라는 사람들 1편

FIA : 경주차가 더 느리기를 바라는 사람들 1편

FIA : 경주차가 더 느리기를 바라는 사람들 1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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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IA : 경주차가 더 느리기를 바라는 사람들


자동차 경주에 참가하거나 관전하는 사람들은 모두 경주차가 조금이라도 더 빨리 달리기를 원한다. 그런데 빠르면 빠른 대로, 느리면 느린 대로 걱정하는 사람들이 있다. 다름 아닌 주최 측이다.

어떤 일이 잘 유지되고 발전해나가기 위해서는 관리, 감독이 필요하다. 자동차 경주라고 해서 예외는 아니다. 현재 전 세계의 모터스포츠를 관리하는 대표 조직은 국제자동차연맹(FIA)이다. FIA는 마치 UN처럼 각 나라의 모터스포츠 관련 단체나 기관을 산하에 둔 국제기구다.

자동차 경주와 관련된 단체의 필요성은 모터스포츠가 처음 시작될 무렵부터 제기되었다. 저마다 차를 만드는 기준과 규격이 다르면 공정한 게임이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1906년 프랑스자동차클럽(ACF; Automobile Club de France)이 생겨 처음으로 자동차 경주에 관한 규정을 만들었다. 이 단체는 경기 운영 방식이나 경주차의 참가 자격 등 원시적인 단계의 기준을 내놓았다. 그러나 어디까지나 프랑스 안에서 통하는 이야기였다.

자동차 경주는 국가 간 대결 양상으로 확대되면서 세계 어디에서나 통용될 수 있는 기준 마련이 절실해졌다. 이 같은 바람과 기대 속에 마침내 1947년 FIA가 결성되었다. 이 단체는 1950년 새로운 공식 규격(Formula) 아래 세계 챔피언십 대회를 만들어 포뮬러원(F1; Formula one)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F1이 세계적인 인기를 끌면서 FIA도 부동의 위치를 굳혔다. 현재 전 세계 192개국 가운데 118개국 이상의 모터스포츠 주관 단체와 클럽들이 FIA의 회원이다. 자동차 메이커조차 국제적인 경주차 인증을 받으려면 FIA를 통해야 하고, 경기장인 서킷 역시 엄격한 심사를 통해 공인을 받는다.

자동차가 굴러가는 거의 대부분의 나라가 FIA의 산하에 있지만 미국은 예외다. NASCAR, NHRA 드래그 레이스, SCCA(Sports Car Club of America)프로 레이싱 등 각 대회의 주최자가 스스로 주관 단체 역할까지 맡고 있어서다. 다른 나라들과 떨어져 고립될 우려가 있지만 워낙 땅덩이가 크다 보니 남을 전혀 신경 쓰지 않고도 운영이 된다.

5년 임기인 FIA의 회장은 산하 단체의 투표로 결정된다. 현재의 회장은 영국인 막스 모즐레이(Max Mosley)로 1991년 이후 연임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사단법인 한국자동차경주협회(KARA;Korea Automobile Racing Association)가 국내 모터스포츠 전반을 관장하고 있다. 이 역시 FIA에 소속된 단체다.

이들 단체가 하는 가장 중요한 일은 자동차 경주대회의 규칙을 만들고, 감시 감독하는 것이다. 챔피언십을 제정해 시상하는 것도 물론 이들의 몫이다.

FIA 등이 규칙을 만드는 데 핵심으로 삼는 것은 누구에게나 공평한 경기가 되도록 하는 공정성, 인명 사고를 막는 안전성이다. 특히 드라이버나 관중의 사망사고는 자동차 경주에 위기를 불러올 수 있는 중대사안이므로 해마다 경주차의 발목을 잡는 규정을 강화하는 추세다. 되도록 경주차의 속도를 줄여 인명 사고의 위험을 줄이고, 관중의 흥미도 떨어지지 않도록 배려해야 하는 양날의 칼을 쥐고 있는 셈이다. 예를 들면 레이스에서만 쓰이는 F1 경주차도 일반 양산차처럼 시속 45km의 전후면 충돌 시험을 의무적으로 통과해야 한다.

사실 카레이싱은 FIA의 규제와 이를 돌파하려는 레이싱팀들의 기술개발이 끊임없는 대결을 벌이며 발전해왔다. 강력한 규제는 새로운 기술을 만들어내는 동기가 되었고, 신기술의 등장은 다시 새로운 규제 조치를 불러왔다.

F1 그랑프리가 처음 시작된 1950년에는 배기량 4,500cc[터보 차저(charger)의 경우 1,500cc 이하라는 간단한 규제만 있었다. 당시 1,500cc 슈퍼 차저 엔진을 얹어 무적으로 군림하던 알파로메오 경주차의 성능은 425마력(최고 속도 250km) 정도였다. 오늘날의 F1 경주차는 3,000cc 이하 엔진으로 900마력(최고 속도 350km)을 낸다. 지속적인 규제에도 불구하고 경주차 성능이 비약적으로 발전한 것이다.

레이스 참가자들이 50년 동안 숱한 규제를 돌파한 아이디어를 살펴보면 매우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경주용으로 개발한 기술의 상당 부분이 이후에 우리가 타고 다니는 일반 도로용 자동차에 반영되었기 때문이다.

FIA가 1960년에 엔진 배기량을 2,500cc 이하로, 이듬해에 다시 1,500cc 이하로 줄이자 F1 팀들은 작은 배기량으로도 빠르게 코너를 지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했다. 1960년에 등장한 로터스의 미드십 엔진(엔진이 네 바퀴 안에 설치된 구조)이나 퍼거슨의 4륜구동 경주차가 좋은 예다. 이 방식들은 오늘날까지 양산형 고성능 스포츠카의 기본이 되고 있다. 차체를 하나의 프레임으로 만드는 모노코크(로터스)도 이 당시 등장한 기술이다.

BF1 경주차의 타이어에는 FIA의 규제에 따라 4줄의 홈을 만들어야 한다. 1968년에 페라리가 현대적 의미의 윙(날개)을 개발하자 FIA는 이듬해 곧바로 윙의 크기를 제한하는 규정을 내놓았다. 그러나 1970년 미국 굿이어 사가 트레드(타이어 접지면의 홈)를 없애 접지 면적을 넓힌 슬릭 타이어를 개발해 모든 경주차들이 다시 이전보다 빨라졌다.

같은 해 라디에이터를 경주차의 앞면이 아닌 옆구리에 설치해 앞부분을 뾰족하게 만드는 쐐기형 머신도 로터스에 의해 개발되었다. 이 아이디어는 현대의 F1 머신의 모양을 결정하는 분수령이 되었다.

1970년 이후 FIA는 그라운드 이펙트(Ground Effect, 지면 효과)를 금지하고 실린더 수를 12기통 이내로 제한하는 등 갖가지 조치를 내놓았지만 역시 무용지물이었다. 1980년대 경주차들은 차체 무게를 혁신적으로 줄인 카본 모노코크(1981년 매클래런)나 경주차의 높낮이를 수시로 바꾸는 변칙적인 기술(1981년 브라밤) 등으로 이에 맞섰다. 1988년에는 페라리가 클러치를 밟지 않고도 변속할 수 있는 세미오토매틱을 선보여 이후 승용차로까지 이 기술이 확대되었다.

FIA는 1994년 아일톤 세나가 사망한 후 잔혹하다고 할 정도의 강력한 규제 조치로 경주차의 속도를 늦추려 했다. 지금은 승용차에서도 흔한 장비인 ABS(Antilook Braking System)나 TCS(Traction Control System), 액티브 서스펜션 등 운전을 돕는 전자 장비의 사용을 전면 금지한 것이다. 또 밋밋하게 만들던 슬릭 타이어에도 4개 이상의 홈을 파도록 의무화 해 접지력을 크게 줄였다.

그러나 F1 머신들은 오래지 않아 규제 이전보다 더 빠른 속도를 냈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윙을 입체적으로 만든 '3D 윙' 등 에어로다이나믹스를 앞세운 차체 디자인과 효율 높은 엔진 기술의 개발로 역사상 가장 빠른 괴물 머신들이 연이어 등장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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